내 삶의 구심력이 되시는 그분을 깨달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이 구심점에 집중하기 위해 단 일분이라도 사용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요15:7)" 이 중심으로부터 계속 생각하고 행하고 봉사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나는 주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거하기 위해 시간을 드리고 있습니까? 나의 삶에서 가장 큰 힘을 주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나 봉사나 섬김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일하려는 노력입니까? 내 삶에서 가장 위대한 힘을 발휘해야하는 것은 주님의 속죄여야 합니다.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우리가 빚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제한하여 우리의 애착이 언제나 이 위대한 능력인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게 해야합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제가가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들은 사실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작정에 의한 것입니다. 신비합니다. 논리적으로 모순되고 말도 안됩니다. 그러나 이는 성도들에게 영광스러운 진리입니다.
("Whatsoever ye shall ask in My name, that will I do." The disciple who abides in Jesus is the will of God, and his apparently free choices are God's foreordained decrees. Mysterious? Logically contradictory and absurd? Yes, but a glorious truth to a saint. )
***My Utmost for His Highest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의 356일 묵상집>
- 나의 삶의 중심과 구심점이 어디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나에게는 정말 주님의 속죄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하고 있는지 내가 그 속죄안에 내 삶을 온전히 드리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고 묵상하게 하는 글입니다.
-내 하루의 일분이라도 주님을 깨달기 위하여 드리고 있는지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하루의 분주함이나, 진척이 보이지 않는 일들속에서, 무언가 소망이 보이기를 갈망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을 깨달기 위해 하루의 일분만이라도 주님을 기억하고 예배할수 있냐고 나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일분의 아주 짦은 시간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느 무엇, 누구와도 바꿀수 없는 가장 귀한 것임을 알아 온전히 사수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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