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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1일 토요일

Widow of slain optometrist will return to Afghanistan | afghanistan, killed, medical - Local News - WRGB Channel 6 News

Widow of slain optometrist will return to Afghanistan | afghanistan, killed, medical - Local News - WRGB Channel 6 News

그녀의 삶과 부름에 대한 단호한 응답을 볼수 있는 고백입니다.
나의 삶이, 저희 가정의 삶이 이와같기를 소망해 봅니다.

태국은 정치적으로 여전히 혼돈을 겪고 있고, 이로인해 젊은이들은 나름의 색깔을 내력고 노력하고 있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오늘 하루 먹거리를 걱정하는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복음송의 이런 가사가 떠오름니다. "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 할까 누가 나를 위해 가서 나의 사랑을 전할까 나는 이제 보기 원하네 나의 자녀들 살아나는 그날 기쁜 찬송 소리 하늘에 웃음소리 온 땅 가득한 그날 "
태국의 기독교인과 교회와 성도. 교회 지도자들, 선교사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복음의 진보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방황하는 젊음이들의 미래와 소망을 보여줄수 있도록 기독교의 가치와 삶의 새로운 가치, 조국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꿈을 꿀수 있는 꿈을 꾸는 자들이 생겨나기를 원합니다.

음지에서 고통받고 절망하는 버려진 아이들과 자신의 처지로 인해 절망하는 미혼모들과 그 아이들이 삶의 소망과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여전히 소수로 남아있는 소수부족의 청년들과 그들의 사랑과 가족과 자녀들의 미래가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가족으로 변화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1. 6. 11 사무실에서

열심보다 귀한 순종

만일 당신이 세상의 항구에 매인 밧줄을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폭풍으로 그 줄을 끊으시고 당신을 바다로 내보내실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의 배를 하나님께 매달고 하나님의 목적이 담긴 커다란 파도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눈이 활짝 뜨일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는다면 항구의 술집에서 그곳을 떠날 생각도 없이 감미로운 술에 취하거나 괘락을 즐겨서는 안됩니다. 당장 항구의 술집을 떠나 하나님의 위대한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면 당장 순종하십시오. 순종하면 더 많은 것을 깨달게 됩니다. 당신이 어디에서 영적으로 막혀버렸는지 점검하십시오. 그곳은 바로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필요한 것 같지 않아 순종하지 않은 지점일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영적 지각도 없어지고 분별력도 사라진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자신을 충만케 해야하는 위기의 때에 오히려 영적으로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순종해야 하는 순간에 순종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순종의 모조품은 열심입니다. 자기 멋대로 자신을 희생시키는 마음 상태입니다. 이러한 열심이 종종 영적 분별을 대신하곤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2절에 언급된 영적 사명을 이루기 보다 자신의 열심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으로 당신의 삶 속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자신을 희생시키는 그 어떤 위대한 열심보다 훨씬 귀한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 15:22)" 하나님께서 당신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가실 때 자꾸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려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 알리라(요7:17)"

< 주님은 나의 최고봉-한영합본, 오스왈드 챔버스 >

- 오늘 나에게 주어진 순종이 무엇인지를 묻게하는 귀한 글이다.
- 이 시간 나에게 주어진 순종의 일들은 무엇일까?

지난 여러달 고민하던 주님의 인도하심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다시 묻게하는 질문들이다.
이것이 정말 주님의 방법일까? 이것은 정말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수 있을까?
만약 이 일이 실패하면 어떻하지?
내가 지난 여러달 고민하고 장고한 것들이 하나하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인 두려운 것일까? 무엇이 부끄러운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나자신의 열망은 무엇일까?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주님의 뜻을 보여달라고 기도 해놓고, 내가 예상치 않은 내가 할수 없을것 같은 일들에 대한 두려움은 무엇일까?

오늘 내가 꾼 꿈은 이런 것이었다.

모두가 나를 환영하고 기뻐하는 얼굴들과의 만남이었다. 그 방의 전면에는 나를 환영한다는 글귀와 나에게 바라는 그들의 소망들이 아름다운 글로 장신되어 있었다. 나는 그 황홀함과 따스함에 취해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작은 선물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그의 정성이 담긴 작은 새였다. 그곳에 나에게 주는 위로의 글귀가 있었다. 그 내용은 기억할수 없지만 그 글귀를 읽는 순간 내 마음의 모든 아픔과 절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 사람과의 대화를 하던중 그가 내게 묻었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소망이 무엇인지를 묻는듯했다. 나는 자신있게 .. 라고 답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방의 전면에 붙여진 그들이 바라는 소망의 글귀가 한 사람에 의해 지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내가 소망하는 바가 그 벽면에 쓰여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곤 잠이 깬다. 그리고 한동안 그 꿈을 생각했다. 그순간을 다시 기억하려고 눈을 감았지만 더 이상 그 따스함과 아름다움을 느낄수가 없었다.

조금후에 내게 깨달음이 왔다. 내가 정말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분들은 내게 어떤 기대나 바람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내가 바라고 행하는 일, 소망하는 일들에 대해 그것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격려할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에 대한 순종이 아닌간 생각한다.
나와 나의 가족을 위해 중보하는 많은 기도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들의 기도는 결코 허상의 것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기도는 결코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보좌앞에 바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오늘 내게 큰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해준다.

내 삶의 구심점을 묵상하며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내적 사역을 충실히 이루고 있습니까?(Am I fulfilling this ministry of the interior?) 중보기도에는 덫도 없고 극단 및 교만의 위험도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진실한 열매를 맺는 숨겨진 사역입니다. 영적인 삶을 부실하게 내버려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속죄를 당신의 모든 삶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의 모든 분야를 다스리고 계십니까? 만일 하나님의 구심점, 곧 주님의 속죄가 내 삶의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중심이라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위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내 삶의 구심력이 되시는 그분을 깨달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이 구심점에 집중하기 위해 단 일분이라도 사용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요15:7)" 이 중심으로부터 계속 생각하고 행하고 봉사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나는 주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거하기 위해 시간을 드리고 있습니까? 나의 삶에서 가장 큰 힘을 주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나 봉사나 섬김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일하려는 노력입니까? 내 삶에서 가장 위대한 힘을 발휘해야하는 것은 주님의 속죄여야 합니다. 시간을 많이 들인다고 우리가 빚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제한하여 우리의 애착이 언제나 이 위대한 능력인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게 해야합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제가가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들은 사실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작정에 의한 것입니다. 신비합니다. 논리적으로 모순되고 말도 안됩니다. 그러나 이는 성도들에게 영광스러운 진리입니다.
("Whatsoever ye shall ask in My name, that will I do." The disciple who abides in Jesus is the will of God, and his apparently free choices are God's foreordained decrees. Mysterious? Logically contradictory and absurd? Yes, but a glorious truth to a saint. )
***My Utmost for His Highest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오스왈드 챔버스의 356일 묵상집>

- 나의 삶의 중심과 구심점이 어디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나에게는 정말 주님의 속죄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하고 있는지 내가 그 속죄안에 내 삶을 온전히 드리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고 묵상하게 하는 글입니다.
-내 하루의 일분이라도 주님을 깨달기 위하여 드리고 있는지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하루의 분주함이나, 진척이 보이지 않는 일들속에서, 무언가 소망이 보이기를 갈망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을 깨달기 위해 하루의 일분만이라도 주님을 기억하고 예배할수 있냐고 나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일분의 아주 짦은 시간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느 무엇, 누구와도 바꿀수 없는 가장 귀한 것임을 알아 온전히 사수하고 싶은 것입니다.